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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교회에 다니는 것과 천국 가는 것은 별개입니다

정발드 2018. 6. 27. 18:45

교회에 다니는 것과 천국 가는 것은 별개입니다

 

 

 

 

이 시대 대한민국에는

수 많은 교회가 있습니다.

 

수 많은 주의 종들이 있습니다.

수 많은 주의 신실한 백성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외형적으로 보면

모두 천국에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은혜롭고 충성되며 신실한 것 같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시간을 드리고

자신의 재물을 드리고

자신의 삶을 드리는 분들입니다.

 

그들은

예배를 빠짐 없이 출석하고

기도를 틈나는 대로 하고

말씀을 시간나는 대로 묵상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교회 또한

여러가지 양육 프로그램과

선교프로그램으로 그들의 신앙의 성숙을 도모합니다.

 

우리는

참으로 많은 시간들을

교회를 통해 보내고 있습니다.

 

삶의 많은 퍼센티지가 교회생활과 연관이 되어서 돌아갑니다.

 

물론

그러한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나날이 성결함 가운데로 나아가고

그 삶의 열매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져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때까지의 교회는

이러한 충성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하여

성장하여 왔고 완성되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교회 안에서 다른 한 부정적인 측면을 우리는 외면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진리가 외면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가 온전한 진리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왜곡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 중 하나는

값싼 구원론 입니다.

 

고린도후서 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교회 안에만 들어오면 모두 구원 받은 백성인 것 같은

영적 착각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물리적인 교회의 테두리가 구원을 이루는 경계표라는 착각 속에서 빠지게 됩니다.

그 속에서 있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양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고 있습니다.

 

강당에서 선포되어지는 말씀 속에서도

우리 모두가 구원 받은 백성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교회 안에만 들어오면

예수님을 믿는다고 입술로 주여 주여 하면

예배시간에 꼬박꼬박 출석만 하면

경건한 모양만 갖추면

교회에서 요구하는 직분에 맞는 행동만 한다면

집사, 장로, 권사, 목사만 된다면

건축헌금을 많이 하기만 한다면

새벽기도 매일 나오기만 한다면

은사를 받아 큰 사역을 하면

 

우리는 구원 받은 것이 당연한 것인 양 우리 스스로 자신의 구주가 되어 버립니다.

 

 

마태복음 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렇지만,

그러한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구원 받은 자의 외형적 조건은

실제적인 의미에서의 구원과는 많은 질적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설교를 통해서

개인적인 성경 묵상을 통해서 알게된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조건들은

실제적으로 성경에서 말하는 의미와 비교해 볼 때

그 근거들이 심히 왜곡 또는 축소되거나

어떤 상황에서는 전혀 다르게 이해되어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의 구원의 조건은

좁은 문 그리고 협착한 길입니다.

 

마태복음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디모데후서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마태복음 5: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누가복음 14:26-27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좁은 문과 협착한 길은


 

쉽게 통과할 수 있는 문과 길이 아닙니다.

교회만 다니면 모두 다 통과할 수 있는 만능열쇠가 아닙니다. 

 

 

물론

 

교회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공급하는 통로는

될 수 있을 것입니다만

교회다닌다고 해서 모두를 구원에 이르는 문 구원에 이르는 길에

이르게 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서기관, 바리새인 등 유대 종교지도자들 또한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모임 가운데 있었고

그 모임들을 이끌어 가던 지도자였습니다.

 

그들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였고

그들은 항상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고

그들은 항상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산다고 노력하던 자들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8:10-11

사람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외형적으로 보면 그들은

현재 교회에 출석하는 우리들과 같은 길을

가고 있었던 사람들 이었습니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그들은 현재 우리들 보다 더 열심히 나름대로

하나님을 섬긴 자들이었습니다.

 

물질적으로

시간적으로

육체적으로

 

그들은 그들 스스로 만족할 만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려고 노력했고

최선을 다한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종말은

하나님으로 부터 버림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종말은

너무나 비참하게 마감되었습니다.

예수님으로 부터 가장 강한 책망을 받던 자들이 되어버렸습니다.

 

더 불쌍한 것은

그들 스스로 예수님의 책망을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세리나 창녀들을 높이시면서

자신들에게는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가혹한 저주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철저히 교회중심적이었고

그들의 신앙은 철저히 말씀중심적이었고

그들의 신앙은 철저히 행함 중심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그렇게도 추구하던 하나님의 진리들과

그들이 수 많은 백성들 앞에서 행하는 외형적 삶들과

그들이 수 많은 시간 자신들을 고통스럽게 하면서 조차 버리지 않았던

금식과 율법과 장로의 유전들을 지키기 위한 나날들 조차도

그들을 구원으로 이끌고 가지를 못했습니다.

 

마태복음 21:32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마태복음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회향근채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태복음 23: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마태복음 23: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누가복음 7:30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은 그의 세례를 받지 아니함으로 그들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

 

우리가 성경을 통해 그들을 보면서

심각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들은 현재 교회안에 있는

수 많은 크리스찬과 별 다르지 않은

어떤 면에서는 훨씬 뛰어난 외형을 가진

신앙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종종

바리새인, 서기관, 대제사장 등

그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너무 쉽게 평가하는 말들을 하는데요.

 

현대 교회안에는

바리새인, 서기관, 대제사장 등과 비교할 때

그들보다 더 나은 외형을 가진 자들 찾기도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내면은 말할 것도 없고

외형 조차 그들을 따라가지 못할 무늬만 크리스찬도 상당히 많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백지수표를 한장 꺼내들어 보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그리스도를 주와 우리의 구주로 온전히 모시면

당연히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태에서

그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도행전 15: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에베소서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에베소서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하박국 2:4

보라 그의 마음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히브리서 10: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그러면 우리가 구원받은 백성의 증표로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를 옷입은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입니까?

무엇을 보고 확증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성경에 나와 있는 말씀을 단순히 아는 것과

입으로 믿는다고 형식적인 고백을 하는 것으로 확증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확증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수 많은 단면 속에서

율법을 완전케 하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가

확증적으로 보여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말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우리의 삶 속에서 과연 우리가

바리새인, 서기관, 대제사장 등과 같은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몸부림 치지만 결국에는 율법을 범할 수 밖에 없는

평토장한 무덤과 같은 회칠한 무덤과 같은

'자기로 부터 말미암은 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 라는 것을

삶 속에서 확증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안에  온전히 거할 때

역사하시는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확증하시는 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온전히 주와 그리스도로 모시면

성령님께서 우리의 속사람을 지배하시게 되고

우리는 그때 온전히 성령님의 마음을 소유하게 되며

구원으로 온전하게 이끄시게 되는데

그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구원으로 이끌지 못한 '자기 의'는 소멸되고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 가운데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함 가운데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요한복음 14:26

보혜사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그 성령님은 우리를 도와주시는 보혜사이십니다.

 

 

그 보혜사 성령님은

연약한 육신으로 말미암아

율법아래에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셔서

율법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율법을 하나도 폐하지 않고

율법에 걸려넘어지지 않게 하시면서

능히 율법을 완전케 하는 단계로 나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태복음 5:17-18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 율법은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같이

그들 육신의 열심, 노력, 지식, 지혜로 완전케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를 통하여 임하신 보혜사 성령님께서

우리안에 충만히 내주하시면서 그 공급하시는 힘으로

우리가 율법을 완전케 하는 단계로 능히 나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 중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남발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은혜만으로 덮어버리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내 죄를 가리기 위한 노리개로 전락시키는 경우가 허다한 것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예수그리스도를 주와 그리스도로 영접한 상태가 아니라고

증명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 또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 보다 결코 낫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은혜아래 있는 자가 아니라

죄아래 아직까지 헤매이는 자입니다.

미혹아래 있는 자 입니다.

죽음 아래 있는 자 입니다.

 

요한복음 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로마서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그들은

구원받은 자가 아니라

구원과 한참 멀어져 있는 자입니다.

 

 

현대판 니골라당인 것입니다.

 

 

그들의 의는

그들이 쉽게 비난하는

바리새인, 서기관, 대제사장 등

 '자신의 의'로 인해

예수님으로 부터 버림을 받았던 그들보다

더 추악한 '거짓 은혜의 의' 가운데 있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은혜가 아니라 더 추악한 죄악아래 있는 것입니다.

바리새인, 서기관, 대제사장들은 '자신의 의'에 의해 멸망 당했지만

이러한 자들 또한 '은혜로 치장한 거짓 의'에 의해 멸망당할 것입니다.

 

로마서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로마서 6:1-2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로마서 6: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은혜가 은혜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죄의 종으로 내어 주지 않고

의에 이르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로마서 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은혜 아래 거한다 하면서

죄와 사망의 법아래 거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거짓 은혜에 거한다는 것을 나타내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열매로 그 나무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이것은 거짓 선지자에 대한 말씀입니다만

모든 신앙생활에 적용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로마서 8:1-6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은혜가 진정 은혜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에 거하는 자들은

회개하고 예수그리스도를 주와 그리스도로 영접한 후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힘입어 또 그 능력으로

육신이 연약하여 할 수 없는

율법의 요구를 완전케 하는 단계로 나아 가는 자입니다.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우는 자들인 것입니다.

떨며 두려움으로 구원으로 향하는 자들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온 몸으로 받는 자들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우리가 연약하지만

죄에 대하여 피흘리기까지 싸울 힘을 성령께서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을 벗어 영의 세계로 가기전까지

우리에게는 어쩔 수 없는 연약함으로 자주 넘어지고 깨어집니다만,

 

그러한 연약함과 넘어짐은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죄를 짓기 위한 도구와 방편으로 악용하는 자들과는

다른 연약함이요 다른 넘어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게 나아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그 과정을 볼 수 있어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우리에게 부어진 의'를 확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하러 오신게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율법을 완전케 하러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주와 그리스도로

모심으로서 동일하게 율법에 대하여 완전하게 나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꼐서 주신 율법의 겉모습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 스며들어 있는 율법의 이면적인 것까지

능히 완전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께서 그에게 온전히 붙들린 우리에게

능히 이기게 하시기 위하여 보내주신

보혜사 성령님의 힘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13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베드로전서 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그 힘으로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에서 거룩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죄가 미워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삶 속에서 구현해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어두움을 향해 뿜어 내는 것입니다.

진리의 깃발을 세상 곳곳에 심는 것입니다.

 

우리가 온전히 예수그리스도를 주와 그리스도로 모셔들일 때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인격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인격안에서는 우리는 능히 율법의 요구를 완전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한

멸망으로 향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를 넘어서는

'구원으로 이르는 의'를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서

인간이니까. 연약하니까 라는 핑계를 대면서

계속적으로 그 죄를 합리화 해 나가는 것는

언뜻 온전히 자신을 예수그리스도께 맡긴 자 같으나

 

"나는 예수그리스도를 주와 그리스도로

온전히 모셔들이지 못한 상태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나의 주인은 예수님이 아니라 나 자신인 것입니다.

나의 주인은 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한 그리스도가 되지 못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연약한 믿음으로 인해 죄를 짓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은혜를 은혜되지 못하게 하는 또다른 '거짓 의'입니다.

한 차원 더 교묘해진 '또 다른 바리새인의 의'의 변형인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본향에 도달할 때까지

온전함가운데로 나아가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러한 상태를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합리화 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져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떨며 두려움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고린도전서 9:27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예수그리스도를 주와 그리스도로 모셔들인다는 것은

에수그리스도와 연합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거룩하심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죄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완전함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탐심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그동안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말씀만 습취하거나

성경에 엄밀히 그렇게 말씀하지 않고 있는데도

우리 편의적으로 구원의 조건을 느슨하게 만들어 놓고

그것을 진정한 구원인 양 위로받고 있습니다.

 

그로인해

수 많은 크리스찬들이 지옥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수 많은 교회들이 힘을 잃어가기 있는 것입니다.

수 많은 교회들이 겉은 살았으나 속은 죽은 송장 같은 것입니다.

버가모 교회와 같이 주님께서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5-16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니골라당이 무엇입니까?

율법은 지나갔으므로 지킬 필요가 없다.

육신은 악이요 영은 선하므로 육신으로 무슨 죄를 짓든지 상관 없다.

그리스도인은 은혜로 보호 받기 때문에 어느 곳에 가서 무엇을 행하든 해받음이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입니다.

 

성경을 똑바로 읽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구원에 대한 기준은

우리가 알고 있는 기준 하고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내에서 알고 있었던 구원의 조건들과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조건들 사이에는

많은 진리의 누락과 괴리가 있는 것입니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 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의 본래의 뜻을 회복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행위구원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6: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진정 회개하고 예수그리스도를 주와 그리스도로 모셔들인 사람은

예수그리스도와 같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온전히 예수그리스도께 붙들린 자는

온전히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예수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5:16-18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로마서 8:12-14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갈라디아서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양선충성

온유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것은 구원을 받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구원 받은 결과로 자신의 구원을 확증하는 중요한 징표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보여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나타나 져야 합니다.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온전히 성령님의 도우심 안에 거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온전히 거하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 안에 온전히 거하는 삶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다.

죄악 가운데에는 성령님꼐서 역사하실 수가 없습니다.

말씀을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을 살아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나아가는 과정이 비록 힘들고 고통스러울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연약함 속에서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도우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의 모든 생각과 지혜, 인간의 방식을 버리고

온전히 예수그리스도를 주와 그리스도로 옷 입고 살아갈때

 

약하지만 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족하지만 완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없지만 풍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성령님께서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능히 이기고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불가능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구원의 문으로 이르는 것입니다.

좁고 협착하지만 능히 구원의 문을 통과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누가복음 14:33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그러한 삶이 예수그리스도의 삶입니다.

그러한 삶이 제자의 삶입니다.

그러한 삶이 구원받은 자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주와 그리스도로 온전히 옷 입지 못할 때

죄가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올무가 우리 가는 길에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망이 우리 앞에 가로놓여져 있는 것입니다.

패배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19-21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은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내 속에 있는 육신에 속한 모든 것을 철저히 부정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말씀에 온전히 복종하는 것입니다.

영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럴 때

우리는 서기관과 바리새인 보다 더 나은 의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의가 바로

예수그리스도 안에 온전히 붙들린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진정한 은혜입니다.

 

육신이 연약하여 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은혜 안에서 넉넉히 해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율법을 완전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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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그리고

그리스도로 모시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렇지만,

그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에 이르는 의는

그냥 말로만 주님을 주와 구주로 모시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실제적으로 그 은혜가 은혜됨으로 보여져야 하는 것입니다.

은혜로 말미암는 의는

그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거룩해 져야 하는 것입니다.

죄를 미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과 동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죽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바리새인, 서기관, 대제사장들이 나아가지 못했던

율법의 완전함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율법의 완전함으로 나아가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왕과 그리스도로 온전히 모셔들인 자에게

예수그리스도께서 약속하셨던 보혜사 성령님의 도움에 힘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예수그리스도에게 온전히 자신의 모든 것을 복종시킨 자들에게

죄를 이기고 거룩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 힘과 능력으로 우리는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행위로 구원받는 다는 말이 아닙니다.

 

구원받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거룩해져 가는 것이 필연적이라는 것입니다.

구원받았다 하면서 그 은혜를 은혜되지 못하게 하는

거짓을 말하는 자와 구별되는 것입니다.

 

기존 교회내에 팽배해져 있는

값싼 구원을 다시 한번 원위치로 돌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삶 속에서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이 보여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하여

우리는 진정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입은 은혜가 얼마나 능력있으며

얼마나 유익하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것인지

실제적으로 확인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출처ⓒ†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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