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니케아 종교회의와 칼케돈 종교회의의 논쟁의 배경과 회의 결과 등을 정리하세요.
니케아 공의회(The Council of Nicea, 325)는 삼위일체론 논쟁에 대한 아리우스와 아타나시우스의 논쟁으로 유명하다. 아리우스(Arius 250-336)는 양자론을 주장하였는데, 그것은 성자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의 문제를 거론하였다. 성자는 성부에게서 출생하였다는 이야기는 성자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리우스는 성부와 성자가 기원상 차등이 있다는 주장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성부와 성자는 유사본질, 즉, homoiousios를 주장하였다.
그대신 아리우스는 성자는 모든 피조물의 장자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이에 반해 아타나시우스는 정통주의를 주장하는데, 성부와 성자는 동일본질, 즉, homoousios를 주장하였다. 아리우스와 아타나시우스의 이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325년 5월 20일~ 7월 25일에 300여명의 감독들이 참여하였다. 니케아 공의회는 세 부류의 의견으로 분분하였는데, 아리우스파(니코메디아 유세비우스), 정통파(아타나시우스), 중도파(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로 나뉘었다. 이 세부류는 예수의 신성의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들을 주장하였다.
니케아 공의회는 결국 아타나시우스의 정통주의가 승리하게 되었다. 이에 니케아 신조를 통해 공의회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 내용으로는
- 우리는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만물을 지으신 전능하신 아버지, 한 하나님을 믿사오며
- 하나님의 아들 성부에게서 나신 독생자 즉 성부의 본질로부터 나신 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참 하나님의 하나님이요, 나셨으나 지음 받지 않았고 성부와 동질(homoousios)이시며 그를 통하여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지음을 받았으며 그는 우리 인간과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강림하사 육신이 되어 사람이 되셨고 고난을 받으시고 제3일만에 다시 살아나시사 하늘에 오르셨으며 산자들과 죽은자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오시리라
- 또한 우리는 성령을 믿는다
- 그리고 '그는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거나 '태어나기 전에 그는 존재하지 않았다'거나 '그는 무로부터 존재하게 되었다'라고 말하는 자들이나 혹은 하나님의 아들은 다른 본체나 본질로부터 나신 것이라거나 혹은 피조되었다거나 혹은 변경과 변화에 종속되었다고 주장하는 자들에 대해서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는 이를 정죄한다.
이런 신조를 통해 이단으로 판정하는 것은
a. 성자가 존재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는 주장
b. 성자가 나시기 전 그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
c. 성자는 성부와 다른 본질에서 나셨다거나 다른 본질이라는 주장
d. 성자가 창조되거나 변한다거나 변화할 수 있다는 주장
이와 같다.
이에 예수의 신성과 인성의 관계문제 확정으로 인해 안디옥과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논쟁을 잠식시키기 위해 칼케돈 공의회가 451년 10월 8일~11월 1일에 소집되었다. 칼케돈은 안디옥과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절충으로 두 본성을 지닌 한 인격체, 즉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고 참 인간임을 결정하였다.
칼케돈 신조는
- 그러므로 거룩한 교부들을 따라서 다음과 같이 가르치기로 우리는 만장일치로 결정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한 분 동일하신 하나님이시며, 신성에 있어서 동일하게 완전하시고, 인성에 있어서 동일하게 완전하시고,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시고, 이성적 영과 몸을 동일하게 가지신다. 그는 신성에 있어서 아버지와 동일 본질이시고, 인성에 있어서 우리와 동일 본질이시나 죄를 제외하고 우리와 똑같으시다. 그는 신성에 있어서 시간 이전부터 아버지로부터 낳으시고, 동일하신 분이 마지막 날에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셨으니, 그의 인간성에 대해서는 동정녀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이다.
- 우리는 한 분 동일하신 그리스도, 아들 주님을 독생자로 인정하며 두 본성이 혼돈이 없고, 변화도 없고, 분리도 없고, 별거도 없는 연합체로 알려졌으나 두 본성의 차이가 연합으로 인해서 결코 없어지지 않았으며 각 본성의 속성은 한 위격과 한 본체 안에 [다같이] 보전되고 함께 역사한다. 두 위격으로 나누어거나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한 분 동일하신 아들로서 독생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시며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옛선지자들이 예언한대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자신에 대해서 우리에게 가르쳤으며 우리에게 전달된 교부들의 신조가 그렇게 가르친다.
이에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은 다음과 같다.
1) 성부, 성자, 성령은 동등한 위치 동등한 본성을 지니신 참 하나님이시다.
2) 예수는 우리 속죄의 주관자요, 하나님은 창조의 주관자요, 성령은 우리 속에서 우리의 구원을 적용하고 완성하신다.
3) 예수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시되 죄는 전혀 없으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한다. 그리고 그 분은 영원하신 분이다.
4) 성령도 우리의 예배와 찬양과 기도를 받으시며 이를 도우시는 인격적인 존재이다.
2. 초대교회 이단들과 교회의 응전을 정리
초대 교회의 이단은 세가지로 나뉠 수 있다.
1) 영지주의(Gnosticism) 2) 말시온(Marcion, 약 85-160년경), 3) 몬타누스 운동(Montanism, 170년경) 으로 나뉠 수 있다.
1) 영지주의(Gnosticism)는 기원을 사도행전 8장의 사마리아의 시몬으로 본다고 한다. 주요 주장들은 이원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삼분론적 인간관과, 가현설(docetism)을 통해 성육신을 부정하는 기독론을 가지고 있으며, 특별한 지식인 영지(Gnosis)를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이 영지주의는 그 당시 헬라니즘 가운데 깊이 뿌리 박은 문화적, 종교적 사상들이다. 이 영지주의는 여러 이단들에게 사상적 기반을 제공하였고, 오늘날 포스트 모던니즘과 뉴에이지 운동까지 이르고 있다.
2) 말시온(Marcion, 85-160년경)을 통해 초대 교회는 정경의 필요성을 제기하게 되었다. 말시온은 세르돈(Cerdon)을 통해 영지주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말시온의 주장은 신약과 구약을 대립구도로 보았다. 그래서 율법과 복음을 구별하게 되었고, 신약의 하나님과 구약의 하나님을 구별하였다. 이에 엄격한 이원론 주장을 하게 되었다. 이에 결혼은 악하고 육체 부활의 사상을 부인하게 되었다. 이에 말시온은 4장 이후부터 누가복음과 목회서신을 제외한 바울서신을 정경으로 채택하였다. 이러다 보니 말시온의 주장 때문에 교회는 정경을 채택하게 되었다.
3) 몬타누스 운동(Montanism, 약 170년경)을 통해 계시의 종결성을 교회가 제기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몬타누스 운동은 성령의 직접 계시를 주장하여 성령 시대를 주장한다. 이에 몬타누스는 예언과 은사를 강조하게 되었다. 몬타누스는 프리스킬라와 막시밀라라는 두 여 선지자를 데리고 다녔다. 그리고 몬타누스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기대에 집중하게 되는데, 그 장소를 페푸자와 타미움 사이 들판으로 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몬타누스는 엄격한 도덕률과 금욕주의를 강조하게 되었다.
이런 이단들에 대해 교회의 대처는 다음과 같았다.
먼저는 계시관을 확립하게 되어서 성경의 완전성과 무오성, 그리고 계시의 종결성을 주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올바른 성경 해석을 통해 전통과 기독교 신앙에 의존하는 정경화 작업을 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결과로 성경적 창조론의 확립을 하게 된다.
3. 초대교회의 박해를 시대별로 정리
초대교회는 급성장을 하는 이유를 통해 박해를 받게 되었다. 복음 전파를 촉진시킨 요인들은 종교적 요인으로 Pax Romana- 로마의 평화를 추구하였고, 문화적 요인으로는 헬레니즘의 지배와 헬라어의 통일화로 인해 전파 속도가 빠르고, 종교적 요인으로 로마의 종교혼합정책으로 종교의 자유화를 들 수 있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통해 회당과 70인역을 통해 복음이 전파되는데 속도가 붙을 수 밖에 없었다.
초대 교회는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급성장하자 로마는 박해를 시작하는데, 그 이유는 황제숭배거부로 정치적인 원인을 들 수 있고, 기독교가 식인종 집단이며,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기독교에 대한 오해에 대한 사회적 원인을 들 수 있다.
박해는 1차 박해(약 64-96년)에 황제들의 개인적인 문제나 정치적인 문제의 해결책으로 박해가 있었고, 2차 박해(약 98-249년)가 국부적으로 진행된 박해가 특징인데, 정당한 재판을 통해 박해가 이루어졌다면, 3차 박해(약 250-313년)는 전국적인 박해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리벨루스 증명서를 필요하게 되었고,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가 공인되게 되었다.
1차 박해(약 64-96년)는
a. 네로 황제(54-89년)의 박해를 들 수 있는데, 로마의 대화재 사건이 발생하는데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씌워서 박해를 하게 된다. 바울과 베드로가 이때 순교하게 된다.
b. 도미티안 황제(81-96년)의 박해가 있었는데, 이는 도미티안 황제가 로마의 전통을 복원하려는 황제의 정책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박해를 하게 되었고, 이때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게 되었다.
2차 박해(약 98-249년)는
a. 플리니와 트라얀 사이의 서신이 문제가 되었는데, 비티니아(Bithynia)총독 플리니는 기독교인들 기소의 문제로 고민하다가 트라얀 황제에게 문의하는데, “고발이 되면 처벌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고발되었더라도 개전의 정이 보이면 용서한다. 익명의 투서는 받지 않는다” (트라얀의 정책 2세기와 3세기동안 유지)
b. 이그나티우스(Ignatius, 50-110)의 순교
“하나님의 사자”라고 자신을 호칭하며 안디옥의 감독이었다. 로마로 압송되며 7개의 편지를 남겼다. “나는 그대들의 친절이 나를 오히려 해치리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당신들은 그 계획을 성공시킬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디 나의 부탁을 들어 나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큰 은혜를 얻게 하라... 나는 고난을 당할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할 것이며 언젠가 자유스럽게 그와 함께 다시 부활할 것이다. .. 나는 그리스도의 순수한 떡으로 바쳐질 수 있도록 짐승들의 이빨에 찢겨야 할 하나님의 밀알이다.”
c. 폴리갑(Polycarp, 69-155 ?)의 순교
안토니우스 피우스 황제 때 순교
“나는 86년동안 그 분을 섬겨왔는데 그동안 그 분은 한 번도 나를 부당하게 대우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찌 이제까지 섬겨온 나의 왕 그리스도를 모독할 수 있겠습니까?”
d.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61-180)의 박해
“명상록”을 쓴 5현제 중에서도 현명한 황제였지만 철학적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 기독교인들은 어리석은 고집장이 정도로 인식함으로 기독교를 박해함. 기독교 변증가 저스틴 마터(100-165)의 순교.
e. 셉티무스 세베루스(193-211)의 박해
혼합절충주의 채택--- 태양신 숭배 퍼페투아와 펠리시타스의 순교
“현재 나의 고통은 나의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야수들에 대항할 때는 또 다른 이가 내 가운데 역사하실 것이다. 내가 그를 위해 고난을 당하니 그가 내 대신 또한 고통을 받으실 것이 틀림없다”(펠리시타스)
3차 박해(약 250-313년): 전국적인 박해
a. 데시우스 시대(249-251)의 박해
황제 숭배 강요 후 리벨루스(libellus) 줌
전국적인 박해로 확대 ,단지 핍박이 아닌 배교에 목적을 둠
b. 디오클레티안 시대(284-305)의 박해
갈레리우스의 충동과 핍박, 수상이던 도로테우스의 순교, 왕비 프리스카와 딸인 발레리아의 순교
3) 기독교 공인
콘스탄틴 대제의 밀라노 칙령(313년), 터툴리안 “순교자의 피가 교회의 씨앗”
공인의 결과
a. 긍정적인 면: 비밀종교가 아닌 공인된 종교, 교회의 비약적 성장
b. 부정적인 면: 정치와 종교의 밀착, 교회의 세속화 시작(생명력 상실)
4. 어거스틴의 생애와 사상을 정리
생애
“참회록”을 통해 자신의 생애를 잘 보여준다.
북아프리카 타가스테에서 출생, 어머니 모니카의 신앙과 기도
마니교에 심취(9년동안 신앙생활), 밀라노에서 암브로니우스 설교로 기독교 개종
밀라노의 정원에서 회심 체험(롬 13장 11-14절), 히포(Hippo)의 감독
은총의 박사(Doctor of Grace)-죄론과 은총론 정립
2) 마니교와의 논쟁(386-395)
a. 창조론 문제-이원론 기반의 창조 이해, 물질 세계는 악하고 더럽다.
어거스틴 반박-하나님의 선한 창조, 악은 선의 결핍, 왜곡
b. 자유의지 문제- 운명론이나 결정론 주장
어거스틴 반박-인간의 자유의지 주장
타락전-완전한 자유의지
타락후-죄짓는 가능성만 가진 자유의지
3) 도나티스트와의 논쟁(395-410)
a. 성만찬 문제
인효론(도나티스트들)과 사효론(어거스틴), 배교한 성직자들에게 세례를 받거나 그들이 행하는 성례의 문제
b. 교회론 문제
도나티스트들-Pure Church 강조, 어거스틴- 알곡과 쭉정이가 교회에 혼합
4) 펠라기우스 논쟁-원죄와 은총의 문제
a. 펠라기우스(Pelagius, 354-420) 주장
영국의 수도승, 인간의 행위에 따라 선악이 결정, 아담의 죄는 아담에게 국한 (원죄및 인간의 타락 부인), 인간은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 유아는 타락 이전 아담의 상태와 같다
b. 어거스틴 반박
원죄론 (인간의 타락과 유전 주장), 아담에게 생물학적으로 모든 사람의 씨앗이 들어 있다.
불가항력적 하나님의 은혜 (Irresistible Grace)
5) 어거스틴의 역사관
작품 “하나님의 도성”에서 보여준다. 하나님이 도성은 로마가 아닌 교회이다. 하나님의 도성은 순례의 길을 걷는다. 직선적인 역사관을 주장, 무천년주의자로 요한계시록의 천년왕국은 현재의 교회의 모습이다고 주장- 칼빈에게 영향
c. 폴리캅(Polycarp, 80-155)
사도 요한의 제자, 이그나티우스의 서신들을 모으고 보존, 자신의 편지는 주로 성경의 인용문 사용, 이단들을 회심시키는 도구로 사용됨
(말시온과 영지주의자들의 일파인 발렌티누스 추종자들)
기둥에 묶여 화형당함(순교)
순교자 저스틴(Justin Martyr, 100-65): 기독교 변증서 기록
“제1변증서” 로고스 교리 주장, “제2변증서” ,“트리포네와의 대화”
자신의 변증을 순교로 확증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